지난 2004년 이른바 <펜타곤 보고서>가 일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관련기사)
이 보고서는 미 국방부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 국가 간 중요한 갈등요인은 직접적인 생존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자연재해를 꼽았다. 그 결과 식량이나 물, 에너지 확보를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보고서는 당시 부시 행정부에게 “기후변화 문제가 과학적 논란의 대상을 넘어 미국의 국가안보적 관심사항이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펜타곤 보고서를 보도한 옵저버지(c)옵저버
국가안보에 관한 한 한국만큼 민감한 나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5천년 역사 동안 약 천회에 달한다는 외침과 일제40년, 그리고 내전을 겪으면서 아마도 우리 유전자에는 ‘생존’ 자체의 간절함이 처절하게 새겨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광우병 파동 때문에 촛불집회에 나온 어린 학생들이 “우리는 살고 싶다”고 언뜻 생뚱맞게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그 믿음은 더욱 굳어졌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문제는 단순히 통상교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안보의 문제라는 확신과 함께.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세워진 지 올해로 60년이나 지났지만 돌이켜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 ‘국가안보’라는 개념조차 있었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간 우리의 ‘국가안보’는 거의 대부분이 북한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억지력이었다. 그나마도 아직까지는 그 국가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맡겨 둔 상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우리의 국가안보를 스스로 규정하거나 정의하거나 계획해 본 적이 없다.
2008년 현재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물론 평시작전통제권은 우리에게 있지만 한국이 전쟁 상황인가 아닌가 하는, “국가안보의 상태를 정의하는 주체”는 여전히 미군사령관이다. 한국군이 유사시 어떤 군사작전을 펼칠 것인가 하는 작전계획도 한국군이 세워본 적이 없다. 미국이 대신 세워준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50년도 더 된 습관이다.
혹자는 그 덕분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용미(用美)의 실용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목숨을 남에게 저당잡힌 상태에서 아무리 돈이 많아봐야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상태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상태로 바꿀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단지 미국이 싫어서 반미(反美)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결코 우리 자신일 수가 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군사적 안보상황이 이 정도라면 보이지 않는 국가안보는 보나마나다. 생존이 물리적으로 담보 잡힌 상황에서 그 무엇이 자유로울까. 그리고 그렇게 50년을 스스로의 생각 없이 살아온 습관이 쉬 바뀔 리도 만무하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습관에 따라 거세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협상 과정과 내용을 보면 그 "뇌송송 구멍탁"의 참담함이 여실히 증명된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안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원자재와 식량 가격의 급상승은 이미 현실이다. 마침 며칠 전에는 서해안에서의 원인모를 해일로 많은 인명을 잃었다.
북한이나 주변국들로부터의 군사적 위협만이 국가안보의 범주에 포함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안정적인 식량의 공급과 자원의 확보, 예기치 못한 기상재해에 대비한 철저한 감시와 대비태세의 완비는 21세기의 문명국가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요소들이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단순히 자동차나 반도체를 사고 파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고 곧 국가안보의 문제다.
국가안보를 스스로 정의할 수 없다는 증거는 이번 협상에서 수없이 드러났다. 얼마 전 강기갑 의원이 폭로했듯이 정부는 불과 몇 개월 전에 스스로 정했던 기본원칙마저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국가가 외부로부터의 위험에서 그 국민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그 극명한 예는 이른바 이번 협상의 핵심 사안 중 하나였던 강화사료금지조치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 통상관리들은 ‘우리가 정의’해야 할 그 금지조치들을 ‘미국이 정의’하도록 포기해버렸다. 이는 마치 6.25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군사작전권을 미군사령관에게 이양한 것과도 같다. 덕분에 교차감염에 노출된 미국소들이 수입될 길이 열렸다. 그 뿐인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창궐해도 우리가 우리 대문하나 닫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아니라 미국을 섬기는 머슴이었고 우리 모두를 미국의 머슴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기 나라를 자기 손으로 지켜보지 못한 대가는 이처럼 비참하리만치 값비싼 것이다.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c)malaykorea.com
이번 방미에서 얻어 와야 할 것은 팽개치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들은 모조리 내주고 만 것이다. 도대체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미국에서 얻어온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대통령에게 국가안보라는 개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니 국가안보는 고사하고 시장 상인들도 이런 식의 흥정은 안한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은 지금 시민들과 학생들이 비과학적인 주장에 현혹되어 비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비과학인가. 한 국가가 국가이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정의조차 하지 못하는 지도층이 국민들에게 과학을 말할 수 있는가? 과학의 출발은 올바른 개념정의에서 시작한다. 또한 과학은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한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면 그것은 과학법칙으로서 큰 의미가 없다.
지금 정부는 아무런 근거없이 스스로 정한 원칙도 불과 몇 달 만에 자기 손으로 부정하는 마당에, 국가존립을 위한 보편원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마당에 국민들보고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현직 과학자로서 단호히 말하건대 결코 그렇지 않다.
무지한 국민들이 잘못된 과학적 ‘지식의 단편’들에 현혹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은 사소한 잘못이다. 합리적이고 광범위한 토론으로 올바른 지식들이 많이 유통되면 금방 해결될 문제다.
이에 비하면 정부가 스스로의 원리를 무너뜨린 행태는 과학이나 문명과는 한참 거리가 먼 야만에 가깝다. 돈이 많아 좋은 옷에 좋은 집에 좋은 음식을 누린다고 다 문명사회가 아니다. 역사의 시작은 기록과 함께했다. 인류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겨 스스로의 준거로 삼고 후대에 남겨 온 발자취가 곧 문명의 역사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 그 행정부는 문명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반(反)문명적이다.
주무부서는 자신들이 작성한 협상의 기준들, 자신들이 기록한 광우병의 위험성들을 모조리 부정했다. 이미 후보시절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의 언행이 기록된 온갖 매체들을 부정했다. 다라니경과 직지심경을 거쳐 한글과 조선왕조실록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의 유구한 ‘기록문명’은 ‘아륀지’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땅을 사랑했던 여인, 표절과 문서위조를 밥 먹듯 하면서도 당당했던 그 수하들은 차라리 자녀 위장취업과 위장전입의 훈장을 달고서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명박 자신보다야 낫지 않은가. 그들의 거침없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아마도 진심이었으리라. 문명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까. 그 권력을 창출했던 보수언론들도 지금 하나같이 5년 전 자신들의 말들을 모조리 뒤집었다.
이것이 소프트웨어적 측면이라면, 한반도 대운하는 그야말로 문명파괴의 거대한 하드웨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선박의 스크류가 수질을 개선한다는 코메디가 첨단과학으로 둔갑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미친 소는 이미 미친 소가 아니라 값싸고 질 좋은 고기일 뿐이다. 소곱창을 즐겨먹는 우리의 오랜 식습관은 언제부터인가 좋지 못한 ‘비헤이비어(behavior)’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양반들이 국민들에게 과학을 요구한다!
이런 대통령과 정부에 5년간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안보를 맡겨야 한다니, 그 실체를 확실히 알아차린 국민치고 길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국민들이 만사 제쳐놓고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한 마음을 그리도 헤아릴 수 없을까. 그 뒤에 배후가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청계천으로 달려 나갈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으며 문명에 대한 개념도 없어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된 쇠고기 협상 때문에 지금 한국은 심각한 ‘국가안보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식량은 가장 원초적이고 일차적인 국가안보요소다. 그 세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지금 어린 학생들은 그 생존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거리로 나섰다. 민심은 천심이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명박(MB)은 미친 소(Mad Bovine)”를 연호했다. 나는 MB가 결국에는 우리 ‘인간의 파괴자(Mankind Buster)’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이다. 5월3일 청계광장의 촛불집회(c)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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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의 원문입니다.
오마이뉴스에 나갈 때 몇몇 부분이 잘려서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습니다.
원문이 너무 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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